아직까지는 담담하네요.
결혼식을 마치고,
정해진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에도,
우리 부부를 찾을 직장도,
업무 일정도 없다보니,
부담도, 설렘도 좀 덜한 느낌입니다.
저보다 8살 어린,
아직 여고생이었던,
간호 조무사 실습을 나왔던,
메딕양으로부터 사귀자! 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성인이 된 후에 이야기해, 라고 쿨하게 말했지만,
(그 당시 제 상황이 여자나 만나고 있을 때가 아니었고,
휴일 없는 5년 간의 직장 생활 덕분에 몸이 많이 망가진 상태라)
생전 처음 받아본 이성으로부터의 제안이었지만,
그다지 달갑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보다 한참 어린 철없을 여고생인데도 불구하고,
저보다 더 일을 사랑하는지는 모르지만 자신이 해야할 일을,
굳은 일이고, 어린 여성이 감내하기엔 처절한 상황이었지만,
도망가지 않고 끝끝내 해내는 모습을 볼 떄에는 그동안 만났던,
커리어 우먼들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결혼에 대한 계획은 조금이라도 나이가 많고,
사회 경험이 많은 제가 했지만 여고생이 누려야 할 것들을,
저 때문에 포기하라고 말할 순 없었기 때문에 저와 사귀는 때에도,
캠퍼스 생활을 마음껏 누리도록 했고,
직장인 병원에서 일할 때에도 약속했던 미래에 대한 계획을 수정하는 것도,
허락해줬습니다.
그 이상으로 제 욕망 때문에 메딕양을 괴롭혔고,
그것을 이해해준 유일한 여성이었기 때문에 당연하다 싶었습니다.
다른 여성이라면 그다지 호감 가져할 것 없는 (아버지 재산이 탐이 나는 여성이라면 모르지만)
외모와 학력을 보유한 별볼일 없는 직장을 다니는 30대 남성인지라 ...
이성에 대한 관심보다는 제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에 매달리게 되더군요.
결혼을 하자고 말한 것은 당연히 저였습니다.
매년 한다! 한다! 생각은 했지만 아직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았어! 라는 고민 덕분에,
매년 미뤘던 저였지만 메딕양은 제가 제대로 말을 하기도 전에 미리 승락해주더군요,
덕분에 저는 심적인 부담을 덜은 상태에서 프로포즈를 할 수 있었고,
그동안 허전하게 해뒀던 목과 손목, 약지에 제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성의를 보였습니다.
매우 형식적인 프로포즈였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서 봐왔던 것처럼 눈물이 나거나 하진 않고.
둘다 결혼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했던지 눈물보단 트림 비슷한 녀석이 동시에 나왔습니다.
방귀가 나왔다면 둘다 엄청 웃었겠지만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나더군요.
앞으로 어떤 미래가 저희를 기다릴진 알 수 없지만,
20년 이상 고생해 이룩해놓은 결과물들이 적어도 물질적으로는 풍요롭게 해줄 것이고,
제 스스로는 만들 수 없는 정신적인 풍요로움을 메딕양과 2세들이 해주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그러기 위한 20~30대의 젊음을 희생한 것이지만 30대 중반이 되고 40대가 가까워오니,
이런 희생이 그다지 아깝지 않고 친구들의 상황을 보면 더더욱 그런 듯 합니다.
힘들게 마련해놓은 분에 넘치는 제가 그토록 꿈에 그렸던 모습의 보금자리와,
평생을 풍요로운 삶을 보낼 수 있는 것은 물론 노후 대책까지 완벽히 준비해뒀으니,
이제는 그동안 희생했던 것을 보상 받을 수 있는 중년 부부의 삶을 보낼 수 있도록,
바라는 것만 남은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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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 결혼, 메딕양